구조 사전: 예순네 가지 구조의 구조

  • 초판 1쇄 발행일: 2025년 6월 18일
  • 글: 민구홍
  • 편집: 민구홍, 임경용
  • 디자인: 민구홍 매뉴팩처링
  • 제작: 성원애드피아
  • ISBN: 979-11-90434-83-6 (03600)

모든 것에는 구조가 있다

앞표지에서 뒤표지까지, 구조라는 이름으로 읽어낸 예순네 가지 세계

『구조 사전: 예순네 가지 구조의 구조』는 모든 것에는 구조가 있다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쉽게 잊히는 믿음에서 출발한 책이다. 책은 앞표지에서 시작해 asdf, 제목, 일러두기, 차례, 서문, 글자, 문장, 문단, HTML, CSS, 자바스크립트, 파일, 폴더, 하이퍼링크, 웹 페이지, 웹사이트, 종이, 책, 책상, 의자, 고양이, 창문, 담배, 체리, 너, 이름, 나, 시간, 또 다른 공백, 발문, 찾아보기, 판권, 쪽 번호, 민구홍, 뒤표지까지 이어진다.

이 책에서 구조는 단순한 형식이나 뼈대가 아니다. 구조는 사물과 개념, 감정과 사건, 관계와 문장의 배후에서 그것들을 조직하고 제한하며 이끌고 지탱하는 틀이다. 구조는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모든 형태를 가능하게 만든다. 반복과 대칭, 위계와 분절, 흐름과 전환은 구조의 단위가 되고, 구조는 복잡함을 단순하게 만들거나 단순함을 정교하게 만든다. 이 책은 그 구조를 설명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구조로 이루어진 책이다. 

사전이지만 사전처럼 정렬되지 않는

제목은 『구조 사전』이지만, 이 책은 일반적인 사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항목은 가나다순도, 알파벳순도, 주제순도, 오름차순도, 내림차순도 아니다. 독자는 앞에서부터 읽어도 되고, 마음에 드는 페이지부터 펼쳐도 되며, 무작위로 고른 항목 하나만 읽어도 된다. 이 책의 일러두기는 이 책이 특정한 규칙을 지니지만 그것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구조는 반드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 사전』은 구조에 관한 안내서라기보다 구조로 이루어진 독서의 표면에 가깝다. 각 항목은 구조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하나의 구조가 된다. 제목은 제목이라는 구조를, 차례는 차례라는 구조를, 본문은 본문이라는 구조를, 뒤표지는 뒤표지라는 구조를 수행한다. 이 책에서 설명과 실행은 자주 구분되지 않는다. 구조를 말하는 순간, 이미 또 다른 구조가 만들어진다.

책의 구조에서 웹의 구조로, 다시 사물의 구조로

『구조 사전』의 흐름은 책이라는 물리적 구조에서 시작한다. 앞표지, 제목, 일러두기, 차례, 서문, 본문, 각주, 여백, 공백 같은 항목은 책을 이루는 익숙한 요소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앞표지는 책의 얼굴이자 제목이 최초로 등장하는 구조이며, 뒤표지는 책이 끝났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말해주는 구조다. 표지와 뒤표지 사이에서 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읽기, 닫힘, 분류, 유통, 기억의 질서로 이루어진 장치가 된다.  

책은 곧 언어의 구조로 이어진다. 글자, 한글, 글자체, 자간, 단어, 구절, 쉼표, 마침표, 문장, 물음표, 느낌표, 글줄, 행간, 문단, 들여쓰기. 이 항목들은 우리가 거의 매일 쓰고 읽지만 자주 잊는 최소 단위들을 다시 분해한다. 문장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구조가 완결을 흉내 내는 형식이고, 쉼표는 잠깐의 멈춤으로 구조를 이어 붙이는 호흡이며, 물음표는 문장의 끝에 있지만 문장의 끝을 허락하지 않는 구조다.

이후 책은 컴퓨터와 웹의 구조로 이동한다. HTML은 구조를 선언하는 구조이고, CSS는 구조에 스타일을 선언하는 구조이며, 자바스크립트는 구조에 시간을 부여하는 구조다. 파일은 구조를 저장한 구조이고, 폴더는 구조를 담는 구조이며, 하이퍼링크는 구조에서 구조로 이동하는 구조다. 웹 페이지와 웹사이트는 책과 종이를 지나온 구조 감각을 화면과 코드, 주소와 클릭의 세계로 확장한다. 

asdf에서 시작되는 아무 말의 구조

이 책의 특이한 입구 가운데 하나는 asdf다. asdf는 왼손이 키보드 자판 위에서 처음 배우는 순서이자, 의미 없는 반복을 통해 구조를 체화하는 장치다. 단어이기를 거부하지만 단어처럼 보이고, 명확한 의미 없이도 전송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흔히 테스트용 입력, 실수, 농담, 외마디 감탄사가 되는 asdf는 ‘쿼티’라는 배열, 인간의 손가락, 기계의 타협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책은 asdf를 아무 말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asdf를 무엇이든 말할 수 있음의 전제로 읽는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네 글자 안에도 자판 배열, 손의 위치, 입력의 습관,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숨어 있다. 『구조 사전』이 하고자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대상에서 구조를 꺼내는 것. 아무 말, 빈칸, 여백, 쪽 번호, 뒤표지 같은 것들이 갑자기 조용한 장치로 변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

고양이와 체리에도 구조가 있다

『구조 사전』은 책과 웹, 언어와 코드에만 머물지 않는다. 책상, 의자, 고양이, 창문, 담배, 체리 같은 사물도 구조의 대상으로 삼는다. 체리는 작은 구조 안에 세계를 담고 있다. 단단한 씨를 중심으로 과육이 감싸고, 그 위에 붉은 껍질이 윤기를 더한다. 하나의 점으로 보이지만 속은 층층이다. 입안에서 으깨질 때 터지는 감각은 구조가 감각으로 전이되는 순간이 된다. 

이런 항목들은 책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구조는 거대한 이론의 이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는 문장의 끝,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체리의 씨와 껍질, 고양이의 몸, 창문의 안팎, 이름이 한 사람을 불러내는 방식에도 있다. 이 책은 구조를 찾는 일이 세계를 딱딱하게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가 이미 어떤 방식으로 짜여 있는지 천천히 알아차리는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민구홍이라는 구조

책의 말미에는 「민구홍」이라는 항목도 등장한다. 여기서 민구홍은 고유명사이자 지시 대상이면서 동시에 지시 구조다. 한 사람의 이름이지만, 하나의 구조적 장치로 작동한다. 민구홍은 자신을 서술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매뉴팩처링’을 덧붙인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제품을 만들며, 그 제품을 통해 다시 자신을 서술한다. 이 반복되는 자기 참조는 ‘민구홍’이라는 말을 고정하지 않고 순환하게 만든다. 

『구조 사전』은 그런 점에서 저자 자신의 작업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글쓰기, 편집, 디자인, 웹, 교육을 오가며 활동해온 민구홍의 실천은 이 책에서 하나의 항목이자 하나의 구조로 다시 정리된다. 책은 저자를 설명하는 대신, 저자라는 이름이 어떻게 파일명, 서명, 이메일 주소, 회사명, 제품명, 문장, 구조가 되는지 보여준다.

구조는 해답이 아니라 조건이다

『구조 사전』은 구조를 통해 세계를 명쾌하게 정리하려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를 발견할수록 세계는 조금 더 이상해진다. 책은 구조가 해답이라기보다 조건이고, 결과라기보다 형식이라고 말한다. 구조는 드러나 있지 않다가 오작동을 통해 윤곽을 드러내고, 해체나 오류를 통해 가장 선명하게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는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익숙한 것들을 다시 불편하게 바라보는 과정에 가깝다. 제목은 더 이상 단순한 제목이 아니고, 차례는 더 이상 단순한 목록이 아니며, 웹사이트는 더 이상 화면 위에 뜬 정보가 아니다. 모든 것은 구조였고, 구조가 아닌 것처럼 보이던 것들마저 구조를 품고 있었다.

『구조 사전: 예순네 가지 구조의 구조』는 그런 책이다. 펼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덮은 뒤에도 계속 작동하는 책. 읽는 동안 독자는 구조를 읽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구조 안에서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책 속으로

“구조는 이 책의 주제이자 이 책의 방법이며 이 책 그 자체다.”

“이 책은 구조에 관한 안내서라기보다 구조로 이뤄진 독서의 표면이다.”

“asdf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어떤 구조 위에서만 성립된다.”

“HTML은 구조를 선언하는 구조다.”

“하이퍼링크는 구조에서 구조로 이동하는 구조다.”

“뒤표지는 책이 다시 세계로 복귀하는 구조이며, 이 책의 마지막 구조이자 다음 구조의 예고다.”


차례

앞표지
asdf
제목
일러두기
차례
서문
구조
생각
소리
음악
말
한국어
글자
한글
글자체
자간
단어
어간
구절
쉼표
마침표
문장
물음표
느낌표
글줄
행간
문단
들여쓰기
본문
각주
여백
공백
컴퓨터
코드
HTML
CSS
자바스크립트
파일
폴더
하이퍼링크
웹 페이지
두루마리
웹사이트
웹 브라우저
종이
책
책장
책상
의자
고양이
창문
담배
체리
너
이름
나
시간
또 다른 공백
발문
찾아보기
판권
쪽 번호
민구홍
뒤표지


민구홍

1985년 3월 5일 출생. 다섯 살 무렵인 1989년 정식으로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 일곱 살 무렵인 1991년 매킨토시 LC로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열한 살 무렵인 1995년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첫 번째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시적 연산’ 또는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을 공부했다. 안상수 선생 연구실 ‘날개집’을 거쳐 2010년부터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13여 년 동안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하며 ‘16시’,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하고,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2015년부터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홀로 또는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2016년부터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하며 웹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 이 책을 비롯해 『한 시간 총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인터넷에서 시간 낭비하기』(abb press, 2025), 『선물』(브와포레, 2025),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교육 과정』(작업실유령, 2024), 『연주회』(브와포레, 2024), 『개들도 우리와 똑같아요』(브와포레, 2024), 『세상은 무슨 색일까요?』(브와포레, 2023),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옮긴 글로 「핸드메이드 웹」(J.R. 카펜터, 2023)이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책으로는 『레인보 셔벗』(아카이브 봄·작업실유령, 2019)이 있다. 앞선 실천을 바탕으로 2022년 2월 22일부터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에서 디렉터로 일하며 ‘하이퍼링크’를 만든다. 한편, 2024년 느닷없이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의 친구, PIE의 공동 운영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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